초연함의 비밀
나라는 존재는 자아와 영혼으로 구분된다.
자아는 무엇이고 영혼은 무엇인가.
자아는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영혼은 내 잠재의식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있다.
내 의지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요새 핫하다는 새로운 여러 경험들을
하는 와중 재미나고 뭔가 자극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남는 것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찜찜함
또 누군가를 돕고 있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사람들
내 영혼이 이타적이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 자아가 소위 좋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은
사회라는 이 세계가 우리에게 학습시킨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와 유럽사회의 좋다고 여기는 것들은 어느정도 다르다.
한국은 최종 목표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좋은 직업,좋은 대학,
또 공부를 잘해야하는 이유 등 모든 하위 단계의 것들의 의미가
돈으로 연결되지만
서구권 문화의 경우 돈을 좋아하지만 돈이 모든 것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은 내가 원하는 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우리 자아가 소위 말해 좋다고 여기는 대부분은
경쟁사회에서 우리에게 학습시킨 것들이기에
우리가 진짜 무언가를 원하고 끌어당기는 과정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다.
에너지 충돌현상이 생기게 된다.
에너지는 파동이고 파동은 결이 존재한다.
사람간에도 결이 맞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진짜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 많은 사회가 정해둔 좋다고 하는 것들을 끌어 당겨봐야
에너지 충돌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부작용이 생기거나 끌어당김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결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무얼 할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알아채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부러워할만한 기준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는 조언에 따라
내 행복감을 내 영혼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자아의 파동과 이기적인 영혼의 조합을 상상해보자.
주파수가 맞으니 진짜 뭔가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빠르게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우주라는 공간의 법칙에 따라
이기적인 어떤 행동이 다른 누군가의 에너지에 나쁜 영향을 줬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100% 돌아오게 된다.
시간차가 있을 뿐이며 시간이 길어질 수도록 그 에너지는 더 크게 돌아올 뿐이다.
"내가 진짜 어떤 행동을 할 때 내 영혼이 평온함을 느끼는지를 알아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자주 공부했던 빛과 그림자에 대해 다시 알고 넘어가보자
선과 악, 빛 과 어둠은 늘 공존한다.
빛을 가지려면 그림자를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인데
생각 해보자. 세상에 좋은 단면만을 소유하려고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빛이 비춰지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기에 그림자를 인정해야
빛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은 단순히 좋고 나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밸런스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상대성은 늘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
교도소는 비교적 악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비교적 어떤 사람은 굉장히 착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 사람의 죄가 비교적 가벼운 것일지 모르지만
절대적으로 그 사람은 억울하게 교도소를 간것이 아니라면
악행을 저질럿기에 교도소에 간것이다.
하지만 악이 다수인 그곳에서 이렇게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에너지의 균형력에 따라 선과 악의 밸런스가
맞춰진다는 것이다.
이 균형력은 악이 그 악으로써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선이라는 힘의 밸런스를 그 집단안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계속 낮만 존재한다고 생각해도 어렵고 계속 밤만 존재한다고 해도 힘들다.
낮이 긴 지역이 존재하면 밤이 긴 지역이 존재하고
충만함과 공허함은 늘 함께 존재한다.
우리가 성공이라는 것을 원할때 그것이 이뤄지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를 의아해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는 결국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는 항상 치킨 반반으로 이뤄져있다는 것이다.
세트로 이뤄졌기 때문에
후라이드만 원한다고 양념치킨은 안받을수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늘 극단의 양쪽 개념이 세트로 이뤄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성취를 통해 무언가 얻어내면 그 에너지의 크기 만큼 다른 반대의 위험한
무언가가 세트로 딸려왔음을 늘 생각해야 한다.
교만하지 않아야할 이유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바로 균형력에 대한 이야기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한쪽에 특화되게 계속해서 끌어당기게 되면
다른쪽에서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걸 해결 하는 방법은 이 균형력을 이해하고
밸런스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때 나오는 것이 초연함이다.
우리가 돈을 강력하게 원하고 끌어당기게 되면
교통사고를 당해서 합의금으로 돈이 생기기도 하고
성공이란 것을 해서 돈은 얻었지만 그 양만큼의 공허감으로 인해 주변사람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균형력이라는 이 중력같은 법칙에서 우리가 자유로울수 있는 방법은
바로 초연함이다.
초연함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당기게 되면
에너지의 파동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내 자아와 영혼의 충돌없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대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톱니바퀴가 틀어지지 않고 하루 1cm 조금씩 이동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 영혼이 초연함속에 머물게 해야만 초연함 속에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게 되는데
영혼은 육체와 자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육체와 자아의 힘을 빼는 행위들이 우리가 초연하고 평온해지는
방법이라고 많이 듣는 것이다.
달리기,명상,요가,단식 등이다.
그래서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이 하지 않던 진짜 힘든일을
하루만 하고와도 바로 치료가 된다는 것이 바로 같은 원리이다.
내 영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육체의 에너지를 다 써버려
불면증을 겪을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투자가 굉장히 닮아 있는데 바로
우리는 투자에 있어 나라는 존재가 시장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지루하기 때문에 시장의 흐름을 기다리기 보다
단타를 치고 선물 투자를 통해 시장에 순응하기 보다
시장에 대항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가 난 할 수있어! 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것이 가능한 영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영혼이 옷걸이라고 하면 내 자아는 안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투자라는 시장에서 단타와 선물투자를 통해 큰 돈을 버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들은 그 거대한 에너지를 콘트롤 하기 때문에 그걸 유지하는 것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다른 에너지충전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거대한 에너지를 빨리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거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의미이다.
초연함은 평온함이다.
초연하다는 것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한뒤 내려놓는 것이다.
어깨의 힘을 빼는 것.
노력이라는 것은 내 자아가 내 영혼에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는 행위이다.
우리가 자아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사회라는 시스템에의해 우리의 영혼의 믿음에
제한이 생겼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는 우리 영혼이 상상해낼 수 있는 합당한 근거자료를 줘야한다.
그것이 바로 노력이다.
아무 노력 없이 끌어당김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력을하고 그 다음 내려놓아야 한다.
조바심에 집착하는 순간 끌어당김이 실행되지 않거나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가 종교를 갖는 이유가 바로 이 평온함이다.
결국 이생에서 느끼는 어떤 고통도 생 다음이 있음을 생각하기에
지금 당장 조급함에서 벗어나 초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투자는 삶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삶도 투자도 밸런스 게임이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투자 성공이라는 것은 수 많은 에너지의 업다운 속에서
초연함을 어떻게 끝까지 유지하느냐의 싸움이다.
모두가 에너지를 뺏긴 하락장의 구간에서는 초연함으로 기다려야 하고
모두가 에너지를 폭발 시키는 상승장 구간에서는 역시 초연함으로 나와야 한다.
결국 주변에 따라 내 에너지가 좌지우지 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내 에너지가 밸런스를 찾을줄 알아야만
우리의 투자도 성공할 수 있다.
투자가 힘들고 삶이 힘들 때 눈을 감고 내 고통의 원인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나가다보면 답이 나온다.
신은 늘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의 시련을 주신다고 한다.
내 에너지 그릇이 감당할 정도의 시련을 통해 성장을 유도하시고
그렇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요긴하게 쓰신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흐름을 늘 쫓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세상의 흐름 이전에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